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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근황 업데이트 겸 ERP 홍보

sophie_l 2024. 7. 7. 01:03

근황

벌써 취업한 지도 1년 반이 넘게 지났고, 나는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적응해 가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잘 맞는가?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근데 살아가다 보니 진짜로 잘 맞는 일을 찾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기 일을 너무 사랑하고 일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사람은 글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이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어렸을 때였으면 고민을 꽤 했을 텐데, 나도 살 만큼 살았는데 이 시점에 더 이상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지 않은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는데,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지속적으로 글을 써나갈 끈기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걸로는 밥벌이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터져서 프리랜서로 살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싶었고 그냥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시키는 일 해가면서 인정받고 따박따박 월급 받아가며 사는 삶이 오히려 나에게 더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실제로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글은 여전히 쓰고 싶지만, 그렇게 꿈 많고 공상하길 좋아하던 나도 세월 때문인지 정신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어쩌다 보니 현실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려서 이제는 픽션에서 예전과 같은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한다. 다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래서 글을 쓰더라도 생업이 아닌 취미로, 픽션보다는 에세이 위주로 쓰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꿈은 그렇게 접었는데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는 않았는가 하면, 이에 대해서는 사실 글쎄, 딱히 없다. 그리고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취업 전 호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해보았다. 그때 느낀 것은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구나,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지는 않더라도 다들 자기 자리에서 착실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이 정말로 안 맞고 너무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혹은 이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미래를 그려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어떤 일을 하든 마주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킵고잉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의 지속에 대하여

취준생 때는 여러 이유로 블로그 운영을 지속할 필요성을 느꼈다. 가장 큰 것은 취업시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했다는 근거로 들기 아주 좋은 수단이라는 것. 실제로 모 기업의 면접에서 면접관님이 내가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열심히 정리한 것이 인상 깊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셨고, 면접도 통과했다. 물론 자기 증명의 수단 외에도 더 근본적으로는 공부했던 것들을 블로그에 내 언어로 정리하면 나중에 해당 내용을 리마인드할 때에도 기억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점도 있다. 또, 내가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을 잘 정리하여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사소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블로그 운영의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사이 ERP 직무로 취업을 하였고, 업무 관련된 공부는 주로 회사 클라우드 내에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SAP 자체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툴이기 때문에 외부에 오픈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ERP 운영 역시 고객사-specific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기에 블로그에 작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작성한다면 ABAP이나 마스터 데이터, 제네럴한 모듈 프로세스, 그리고 스탠다드 티코드 정도? 근데 그걸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베스트일지 확신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모듈 지식이 너무나도 파편화되어있고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소화하느라 정신이 너무 없다는 것. 어느 정도 정돈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블로그에 ERP 관련된 내용을 정리할 일은 당분간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기로 결심한 와중에 ERP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른 분야까지 관심을 넓히고 싶은 욕심은 아직은 없다. 이렇듯 여러모로 IT 블로그를 지속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대충 블로그를 닫아둘 생각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와 봤다. 근데 놀랍게도 여전히 하루 평균 20명 정도는 버려진 내 블로그에 방문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많은 수는 결코 아니지만, 과거 글들을 대충 훑어보니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흔적들이 남아있었고, 그것이 이름 모를 단 한 명의 누군가에게라도 사소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를 남겨 둔다면, 당장은 여유가 없어서 힘들지만 언젠가, 조만간에 다시 공부를 하고 이를 오픈된 공간에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겠지. 모듈 지식이 어느 정도로 숙련된 수준에 도달하면 이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ABAP 개발을 공부하면서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여유가 생겨 아예 다른 분야도 공부하고 싶어진다면 다시 블로그를 찾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를 일단은 이대로 열어두려고 한다.

비전공자 여러분 ERP 하세요

사실 나는 취준시 원서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ERP라는 직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산업공학이나 경영학과 혹은 컴공은 아마도 ERP를 학부때 들어봤을 수 있겠지만, 나는 문과대 출신 쌩문과. 전사적 자원관리? 그게 뭔데요? 정말 우연하게도 ERP 직무로 합격하여 일을 시작했지만 사실 입사 직후에도 도대체 ERP가 정확히 뭘 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대기업 SI 계열사에 근무 중이며, SI가 아닌 SM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SI 기업 관심 없는 분들은 읽지 않아도 좋다.

ERP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냥 뭐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 대기업이 있다고 치자. 차를 만드는데 부품을 조달해와서 조립하고 생산하여 이를 고객에게 판매하고 대금 정산을 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어 팔 때까지 부품의 구매와 원가 계산, 생산 관리, 판매와 수출, 회계 등의 업무가 서로 긴밀하게 엮여서 진행될 것이다. 이때 각 부서 간의 업무가 한 시스템 내에서 통합되어 관리되지 않는다면 크나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판매처에서 100대의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에 대한 즉각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아 생산을 80대만 한다거나, 개당 10만 원에 사 온 부품이 5만 원인 줄 알고 계산을 잘못한다거나.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한 기업의 모든 운영 행위를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하여 관리하는 것이 ERP이다.

ERP 시스템을 제공하는 기업 중 가장 유명한 기업은 SAP이다. 무려 독일 시가총액 1위인 기업으로(솔직히 B2B 기업이라 인지도가 B2C에 비해서 조금 딸리는데 1위라고 해서 많이 놀랐다), 현재 기준 사실상 ERP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실제로 독점은 아니지만 이름 들어봤을 만한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웬만하면 SAP ERP를 쓰고 있다. Oracle 역시 ERP 시장에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SAP를 쓰는 추세이다(라고 들었다). 근데 SAP는 너무너무 비싼 나머지 덩치 큰 대기업 아니면 쓰기 쉽지는 않다. 중소기업용 ERP도 많이 나와있지만 대기업 기준으로는 SAP가 대세이다.

SAP ERP를 한다는 얘기는 물론 SAP에 입사한다는 것은 아니고^^ SAP ERP를 쓰는 고객사들의 ERP 사용을 돕는 SI/SM 업무를 하는 것이다. SI는 ABAP 이라는 다소 생소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며, SM은 우리 회사 기준 5개의 큰 모듈(원가/재무/생산/구매/영업)과 서브모듈들에서 고객의 업무를 돕는다고 보면 된다. 난 개발을 잘 못해서 운영이 더 맞긴 한 것 같은데, 여러모로 킹받거나 맘에 안 드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내고 때로는 오류도 고쳐나가고 하는 게 나름 재미있기는 하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SAP ERP라는 것이 사실 기업용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취준생 입장에서 접하기 쉽지 않고 듣보잡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분야는 수요는 꾸준한 반면 공급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한번 들어와서 제대로만 하면 커리어 쌓기가 아주 좋은 것 같다. 물론 나도 고작 2년차 쪼렙인 입장에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뭔지 모르고 입사한 것 치고는 나름 괜찮은 분야인 것 같다. 프리랜서 뛰시는 분들 얘기를 건너 건너 들어보면 페이가 전문직 급이더라.. 자세히는 얘기 못하지만. 진득하게 해서 전문가가 되면 능력 펼치기도 좋고 고인물이 되어 떵떵거릴 수도 있고, 해외 진출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런 분야는 맞는 것 같다. 계속해서 신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모고 나는, 비전공자인 IT 취준생이며 개발을 해봤지만 적성에 엄청 잘 맞지는 않는다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뭔지 확실하지 않은 사람, 자체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닌 SI 기업도 괜찮은 사람, 어찌됐든 열심히 할 테니 일단 일 좀 주세요, 인 상황이라면 ERP 직무를 고려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전공자가 와도 좋지만 사실 전공자면 다른 길도 많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분야가 확고한 사람이라면 훠이훠이 여기는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니 행복을 찾아 떠나가세요. 그러나 나는 위에서 말한 부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ERP 그게 뭔데 하고 들어왔지만 나름 잘 다니고 있으며 다른 직무를 갔다고 해서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SI 기업들에서 ERP 신입을 그래도 꾸준히 뽑는 것 같은데, 중고신입이 아닌 이상 ERP를 실제로 경험해보고 들어온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회사에서도 SAP ERP를 만져본 사람이 아닌, 어떤 언어로라도 개발해본 경험이 있으며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똘똘한 사람을 원한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며 더 원하는 대안이 없다면, 채용공고에서 ERP 직무가 열렸을 때 이게 뭔데? 하고 거르지 말고 한 번쯤 고민해 봐도 될 것 같다. ERP 특성상 이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취준생이 매우 많기 때문에, 이런 것도 있어요~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취준생분들 다들 화이팅입니다!